갑상선기능저하증 상태에서 아이오딘(Iodine, 요오드)의 역할은 저하증의 원인이 무엇이냐에 따라 완전히 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아이오딘은 갑상선 호르몬을 만드는 필수 원재료입니다. 따라서 원재료가 ‘부족해서’ 생긴 저하증(아이오딘 결핍성)에는 치료제가 되지만, 원재료는 충분하나 ‘공장’ 자체가 고장 난 저하증(하시모토 갑상선염 등)에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1. 긍정적 역할 (원인: 아이오딘 ‘결핍’)
이는 갑상선 호르몬을 만들 원재료 부족으로 인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발생한 경우입니다. (주로 내륙 산간 지역이나 특정 개발도상국에서 발생)
부족한 원재료(아이오딘)를 공급하여 갑상선 호르몬 생성을 정상화시킵니다.
- 뇌하수체의 신호 (TSH 증가): 체내 아이오딘이 부족해 T3, T4(갑상선 호르몬)를 못 만들면, 혈중 호르몬 농도가 낮아집니다.
- 우리 몸의 ‘중앙 통제실’인 뇌하수체는 이를 감지하고, “갑상선아, 일 좀 해라!”라는 신호인 갑상선 자극 호르몬(TSH)을 대량으로 분비합니다.
- 갑상선 비대 (Goiter): TSH는 갑상선 세포에게 “아이오딘을 더 열심히, 더 많이 잡아들여라!”라고 명령합니다. 이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갑상선 세포 수와 크기가 증가하여, 갑상선 자체가 붓게 됩니다(갑상선종).
- 아이오딘 공급 시: 이때 아이오딘이 섭취되면, TSH에 의해 잔뜩 활성화된 갑상선 세포(공장)가 즉시 이 원재료를 사용하여 T3, T4 생산을 재개합니다.
- 정상화: 혈중 T3, T4 농도가 정상으로 돌아오면, 뇌하수체는 TSH 분비를 줄이고 갑상선종도 점차 가라앉으며 저하증 증상이 사라집니다.
2. 부정적/무관한 역할 (원인: ‘자가면역질환’ 등)
이는 한국, 일본, 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가장 흔한 원인인 하시모토 갑상선염(Hashimoto’s Thyroiditis)의 경우입니다.
하시모토병은 아이오딘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갑상선 공장 자체를 파괴하는 자가면역질환입니다. 이미 고장 난 공장에 원재료만 쏟아붓는 격입니다. 호르몬 생성에 도움이 되지 않거나, 오히려 갑상선 파괴를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 염증 악화 (기름 붓기):갑상선 호르몬 합성 과정에서는 과산화수소(H2O2)가 사용되며, 이는 필연적으로 활성산소(Oxidative Stress)를 발생시킵니다. 하시모토 환자는 이미 면역세포가 갑상선을 공격하여 염증이 심한 상태입니다. 여기에 아이오딘이 과다하게 공급되면, 갑상선은 이를 처리하기 위해 더 많은 과산화수소를 만들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활성산소가 기존의 염증을 더욱 악화시키고, 면역체계를 자극하여 갑상선 세포 파괴를 가속화시킬 수 있습니다.
- 울프-차이코프 효과 (Wolff-Chaikoff Effect):이는 우리 몸의 방어 기전입니다. 고용량의 아이오딘이 갑자기 체내에 들어오면, 갑상선은 아이오딘의 독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호르몬 합성을 중단해버립니다. (공장 셧다운) 건강한 사람은 며칠 뒤 이 셧다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만(Escape phenomenon), 이미 기능이 약해진 하시모토 환자나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는 이 셧다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저하증이 영구적으로 심해질 수 있습니다.
- 무관함 (Irrelevance):아이오딘은 충분하지만, 면역세포가 갑상선 세포를 이미 파괴하여 호르몬을 만들 ‘공장 직원’이 없는 상태입니다. 아이오딘을 아무리 공급해도 호르몬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아이오딘이 갑상선 호르몬이 되는 과정
아이오딘이 갑상선 호르몬(T4)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원인(결핍 또는 자가면역)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 섭취 및 흡수: 음식물(주로 I–, 아이오다이드 이온)로 섭취된 아이오딘은 장에서 흡수되어 혈액으로 들어갑니다.
- 농축 (Trapping): 갑상선 세포는 ‘NIS (나트륨-아이오딘 공동수송체)’라는 펌프를 이용해 혈액 속의 아이오딘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TSH가 이 펌프의 작동을 촉진합니다)
- 산화 (Oxidation): 세포 안으로 들어온 I–(아이오다이드)는 ‘TPO (갑상선 과산화효소)’라는 효소에 의해 활성형 아이오딘(I)으로 산화됩니다. (이때 과산화수소가 사용됩니다)
- 유기화 (Organification): 이 활성 아이오딘(I)이 ‘티로글로불린(TG)’이라는 거대 단백질에 붙어있는 티로신(Tyrosine) 잔기에 결합합니다. (이 과정도 TPO가 매개합니다)- 아이오딘 1개가 붙으면: MIT (Monoiodotyrosine)- 아이오딘 2개가 붙으면: DIT (Diiodotyrosine)
- 결합 (Coupling): TPO 효소가 이들을 다시 결합시킵니다.- DIT + DIT = T4 (Thyroxine, 갑상선 호르몬)– DIT + MIT = T3 (Triiodothyronine, 활성형 갑상선 호르몬)
- 저장 및 분비: 이렇게 만들어진 T3, T4는 티로글로불린 단백질에 붙은 채로 갑상선 내부에 저장되어 있다가, TSH의 신호에 따라 분해되어 혈액으로 방출됩니다.
- 아이오딘 결핍: 1, 2번 과정에서 원재료가 없으므로 3~5번 과정이 중단됩니다.
- 하시모토 갑상선염: 면역세포가 3, 4, 5번 과정의 핵심 효소인 TPO나 원료 단백질인 TG를 ‘적’으로 오인하고 파괴합니다. 따라서 아이오딘이 아무리 많아도(1, 2번) 호르몬 합성이 불가능해집니다.
결론
- 아이오딘 결핍증 (드묾): 아이오딘 섭취가 필수 치료입니다.
- 하시모토 갑상선염 (대부분): 아이오딘 섭취가 불필요하거나 오히려 해로우므로, 김, 미역 등 고함량 식품의 과다 섭취를 제한해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