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상선 기능저하증(Hypothyroidism)은 체내 대사 속도를 조절하는 갑상선 호르몬(T3, T4)이 충분히 생성되지 않아 신체 대사가 저하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시상하부-뇌하수체-갑상선 축(HPT Axis)의 되먹임(Feedback) 기전을 이해해야 하며, 병변이 발생한 위치와 원인 기전에 따라 크게 일차성, 이차성(중추성), 말초성 등으로 분류됩니다.
1. 일차성 갑상선 기능저하증 (Primary Hypothyroidism)
갑상선 자체의 문제로 인해 호르몬 생산이 감소하는 경우입니다. 전체 갑상선 기능저하증의 95% 이상을 차지하며, 혈액 검사상 TSH(갑상선 자극 호르몬)는 상승하고 fT4(유리 티록신)는 감소하는 특징을 보입니다.
1) 만성 자가면역성 갑상선염 (하시모토 갑상선염)
가장 흔한 원인입니다.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이 환경적 요인(요오드 과다 섭취, 스트레스, 바이러스 등)에 노출되었을 때 발생합니다.
- 기전 (Mechanism):
- 면역 관용의 파괴: 신체의 면역 시스템이 갑상선 조직을 적으로 간주하여 공격합니다.
- 자가항체 생성: 항갑상선과산화효소 항체(Anti-TPO Ab)와 항갑상선글로불린 항체(Anti-Tg Ab)가 생성됩니다. 이들은 갑상선 세포 내 효소 기능을 억제하거나 세포 독성을 유발합니다.
- 세포 파괴: T-림프구(특히 CD8+ 세포독성 T세포)가 갑상선 조직에 침윤하여 여포 세포(Follicular cell)를 직접 파괴하고 세포자멸사(Apoptosis)를 유도합니다.
- 섬유화: 만성적인 염증으로 인해 정상적인 갑상선 조직이 파괴되고 섬유 조직으로 대체되면서 호르몬 생성 능력을 영구적으로 상실하게 됩니다.
2) 의인성 (Iatrogenic) 기능저하증
의료적 처치로 인해 물리적으로 갑상선 조직이 제거되거나 파괴된 경우입니다.
- 수술 후: 갑상선암이나 결절로 인해 갑상선 전절제술 혹은 엽절제술을 시행한 경우, 호르몬을 생산할 조직 자체가 사라져 발생합니다.
- 방사성 요오드 치료 후: 그레이브스병(항진증)이나 갑상선암 치료를 위해 방사성 요오드를 투여하면, 갑상선 세포가 요오드를 섭취한 후 내부에서 방사선에 의해 괴사합니다. 이 과정은 비가역적이어서 영구적인 저하증을 유발합니다.
- 외부 방사선 조사: 림프종이나 두경부암 치료를 위해 목 부위에 고용량 방사선 치료를 받은 경우, 수년 후 갑상선 조직의 위축과 섬유화가 진행되어 기능 저하가 옵니다.
3) 요오드 섭취 관련
- 요오드 결핍: 갑상선 호르몬의 주원료인 요오드가 부족하면 T4, T3를 합성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한 보상기전으로 TSH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갑상선이 비대해지는(Goiter) 현상이 나타납니다.
- 요오드 과다 (Wolff-Chaikoff 효과의 지속): 정상적인 경우 요오드가 과다하면 갑상선은 일시적으로 호르몬 합성을 멈추는 방어 기전(Wolff-Chaikoff effect)을 작동시키고, 곧 적응하여(Escape phenomenon) 정상화됩니다. 하지만 하시모토 갑상선염 등 기저 질환이 있는 경우 이 적응 기전이 작동하지 않아 지속적인 호르몬 합성 억제가 발생, 저하증으로 이어집니다.
4) 약물 유발성
- 아미오다론(Amiodarone): 다량의 요오드를 함유한 부정맥 치료제입니다. 갑상선 호르몬의 합성 및 방출을 억제하거나, 말초 조직에서 T4가 활성형인 T3로 전환되는 것을 차단합니다.
- 리튬(Lithium): 조울증 치료제인 리튬은 갑상선 내에서 호르몬이 혈액으로 방출되는 과정(Colloid pinocytosis)을 억제하여 저하증을 유발합니다.
2. 중추성 갑상선 기능저하증 (Central Hypothyroidism)
갑상선 자체는 정상이나, 상위 조절 기관인 뇌하수체나 시상하부의 문제로 자극 신호가 오지 않는 경우입니다. TSH가 낮거나 정상임에도 fT4가 낮은 독특한 패턴을 보입니다.
1) 이차성 (뇌하수체성)
뇌하수체 전엽의 손상으로 TSH 분비가 감소하는 경우입니다.
- 뇌하수체 선종: 거대 선종이 정상 뇌하수체 조직을 압박하여 기능을 떨어뜨립니다.
- 쉬한 증후군 (Sheehan’s Syndrome): 출산 시 과다 출혈로 인해 뇌하수체로 가는 혈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뇌하수체 조직에 허혈성 괴사가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 기전: TSH가 분비되지 않으므로 갑상선은 위축되고, 원료가 있어도 공장을 가동하지 않아 호르몬 생성이 중단됩니다.
2) 삼차성 (시상하부성)
가장 상위 기관인 시상하부에서 갑상선 자극 호르몬 방출 호르몬(TRH)이 분비되지 않는 드문 경우입니다. 종양, 뇌수술, 외상 등이 원인입니다. TRH가 없으므로 뇌하수체는 TSH를 만들지 않고, 결과적으로 갑상선도 멈추게 됩니다.
3. 일시적 갑상선염에 의한 기능저하증
갑상선 조직이 파괴되면서 저장되어 있던 호르몬이 일시에 쏟아져 나와 초기에는 ‘중독증(항진증)’을 보이다가, 저장된 호르몬이 고갈되면서 일시적으로 ‘저하증’ 시기를 겪는 패턴입니다.
1) 아급성 갑상선염 (Subacute Thyroiditis)
- 원인 및 기전: 볼거리, 홍역, 아데노바이러스 등 상기도 감염(감기) 후 2~8주 뒤에 발생합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염증 반응이 갑상선 여포를 파괴합니다.
- 진행: 파괴된 여포에서 호르몬 누출(항진기) → 호르몬 고갈 및 여포 세포의 복구 지연(저하기, 약 2~4개월 지속) → 세포 재생 및 정상화.
2) 산후 갑상선염 / 무통성 갑상선염
- 기전: 임신 중에는 태아 보호를 위해 면역 반응이 억제되어 있다가, 출산 후 억제되었던 면역계가 반동적(Rebound)으로 활성화되면서 잠재되어 있던 자가면역 공격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시모토 갑상선염의 변형된 형태로 보기도 합니다.
4. 말초성 기능저하증 (소모성 및 저항성)
갑상선 호르몬이 충분히 생성됨에도 불구하고 신체가 이를 활용하지 못하는 매우 드문 케이스입니다.
1) 갑상선 호르몬 저항성 증후군 (RTH)
- 기전: 전신 조직의 세포핵 내에 존재하는 갑상선 호르몬 수용체(특히 TR-β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원인입니다.
- 상태: 혈액 내에 T3, T4는 매우 높지만, 세포가 수용체 결함으로 인해 호르몬 신호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마치 청력이 손실된 것과 같음). 뇌하수체 역시 호르몬이 부족하다고 착각하여 TSH를 계속 높이는 특징이 있습니다.
요약
갑상선 기능저하증은 단순히 호르몬이 부족한 결과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 공장의 파괴 (일차성): 자가면역(하시모토), 수술, 요오드 문제.
- 신호의 부재 (중추성): 뇌하수체나 시상하부의 손상.
- 일시적 고갈 (갑상선염): 염증 후 회복기.
- 수용 불가 (말초성): 유전자 변이로 인한 저항성.
이러한 기전의 차이는 치료 방침(단순 호르몬 보충인지, 면역 억제인지, 혹은 경과 관찰인지)을 결정하는 핵심적인 근거가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