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맥(Bradycardia)을 동반한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말초 신경병증과 보행 중 다리 떨림 현상은 단순한 신경 손상을 넘어선 복합적인 대사성 및 혈역학적 기전이 작용한 결과입니다.
이러한 임상 양상은 갑상선 호르몬 결핍이 신경계(Neuropathy), 근육계(Myopathy), 그리고 심혈관계(Bradycardia)에 동시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시사하는 중등도 이상의 상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 보행 중 다리 떨림(Leg Tremor)의 병태생리학적 기전
보행 중 발생하는 다리 떨림은 단일 원인이 아니며, 신경 전도 지연, 근육 이완 장애, 그리고 혈류역학적 부족이 결합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가. 점액부종성 침착과 신경 압박 (Entrapment Neuropathy)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가장 특징적인 병리 소견은 글리코사미노글리칸(Glycosaminoglycan)이라는 점액성 물질이 피하 조직과 신경 주위에 축적되는 것입니다.
- 기전: 이 물질은 수분을 끌어당겨 부종을 유발합니다. 다리의 주요 신경(비골신경, 경골신경 등)이 지나가는 터널이나 근막 공간이 부으면서 신경을 물리적으로 압박합니다.
- 떨림과의 연관성: 압박된 신경은 고유수용감각(Proprioception, 내 발의 위치를 감지하는 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데 실패합니다. 뇌는 다리의 위치가 불안정하다고 판단하여 균형을 잡기 위해 미세하게 근육을 지속적으로 수축/이완시키려 시도하며, 이것이 겉보기에는 떨림이나 휘청거림으로 나타납니다.
나. 신경 전도 속도 저하와 탈수초화 (Demyelination)
갑상선 호르몬은 신경세포의 미토콘드리아 대사와 나트륨-칼륨 펌프(Na+-K+ ATPase) 활성에 필수적입니다.
- 기전: 호르몬 부족은 신경 세포막의 전위 유지를 어렵게 하고, 장기적으로는 신경을 감싸는 절연체인 미엘린 수초의 손상(분절적 탈수초화)을 유발합니다.
- 떨림과의 연관성: 신경 신호가 다리 근육으로 전달되는 속도가 느려지고 불규칙해집니다. 보행 시 뇌가 내리는 수축 명령과 다리 근육의 반응 사이에 미세한 시차(Lag)가 발생하며, 이로 인해 동작이 매끄럽지 못하고 떨리는 양상(Ataxic gait variants)을 보입니다.
다. 근육 이완 지연 (Delayed Relaxation)과 호프만 증후군
이것은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의 다리 떨림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기전 중 하나입니다.
- 기전: 근육이 수축한 후 다시 이완되려면 칼슘 이온(Ca2+)이 근소포체로 재흡수되어야 하는데, 이 과정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갑상선 호르몬 부족은 이 재흡수 속도를 늦춥니다. (이를 임상적으로는 심부건 반사의 이완기 지연, 즉 Woltman sign이라 부릅니다.)
- 떨림과의 연관성: 보행은 굴곡근과 신전근의 빠른 교대 수축/이완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근육이 수축 후 제때 이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음 걸음을 위한 수축 명령이 내려오면, 근육 내에서 충돌이 일어나며 뻣뻣해지고 덜덜 떨리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근육 비대와 함께 이런 증상이 나타나면 이를 호프만 증후군(Hoffmann’s syndrome)이라 합니다.
라. 서맥에 의한 운동성 허혈 (Exertional Ischemia)
환자가 서맥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 기전: 갑상선 호르몬 부족은 심장의 수축력과 심박수를 감소시킵니다. 평소에는 괜찮을 수 있으나, 보행(운동) 시에는 다리 근육이 더 많은 산소와 혈류를 요구합니다. 서맥으로 인해 심박출량이 근육의 요구량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 떨림과의 연관성: 다리 근육에 일시적인 저산소증이 발생하여 근피로가 급격히 오며, 근지구력이 떨어져 다리가 후들거리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2. 구체적인 치료 방향
치료는 단순히 신경병증 약물을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신 대사 교정과 심장 부하 관리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 호르몬 대체 요법의 신중한 시작 (Start Low, Go Slow)
가장 근본적인 치료는 레보티록신(Levothyroxine) 투여입니다. 그러나 서맥이 있는 환자에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 치료 전략: 갑작스러운 고용량 호르몬 투여는 대사량을 급격히 올려, 적응되지 않은 심장에 과부하를 주고 심근허혈이나 부정맥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주 낮은 용량부터 시작하여 서서히 증량해야 합니다.
- 목표: TSH 수치의 정상화뿐만 아니라, 점액부종을 제거하여 신경 압박을 해소하고 Na+-K+ 펌프 기능을 회복시켜 신경 전도 속도를 정상화합니다.
나. 서맥 및 혈류역학적 모니터링
- 전략: 보행 시 떨림이 심박출량 부족에 기인한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호르몬 치료 초기에는 베타차단제 등의 사용을 피하고, 호르몬 투여에 따라 심박수가 자연스럽게 회복되는지(Chronotropic competence)를 면밀히 관찰해야 합니다. 심박수가 정상화되면 근육으로 가는 혈류량이 늘어 떨림이 개선됩니다.
다. 신경병증 및 근육 증상에 대한 보존적 치료
호르몬 수치가 정상화되는 데는 수 주에서 수 개월이 걸리므로, 그동안의 증상 조절이 필요합니다.
- 약물 치료: 신경병증성 통증이나 감각 이상이 심할 경우 가바펜틴(Gabapentin)이나 프레가발린(Pregabalin)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약물들은 어지러움을 유발할 수 있어 보행 장애를 악화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저용량으로 신중히 사용해야 합니다.
- 영양 보충: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는 위산 저하로 인해 비타민 B12 흡수 장애가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악성 빈혈). 비타민 B12 결핍은 신경병증과 떨림을 악화시키므로, 혈중 수치를 확인하고 필요시 주사제로 적극 보충해야 합니다.
라. 재활 및 물리 치료적 접근
- 고유수용감각 훈련: 발바닥의 감각이 둔해져 떨림이 발생하므로, 시각적 피드백을 이용한 균형 잡기 훈련이 도움이 됩니다.
- 스트레칭: 이완 지연(Delayed relaxation)으로 굳어진 근육을 부드럽게 풀어주는 스트레칭은 보행 시 근육 간의 충돌을 줄여 떨림을 완화합니다. 특히 종아리 근육(비복근, 가자미근)의 스트레칭이 중요합니다.
요약 및 결론
서맥을 동반한 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의 보행 중 다리 떨림은 점액부종으로 인한 신경 압박, 근육의 이완 장애(Woltman sign), 그리고 서맥으로 인한 근육 내 산소 공급 부족이 복합된 결과입니다.
치료의 핵심은 서맥을 고려한 신중하고 점진적인 갑상선 호르몬 보충이며, 이 과정에서 급격한 심장 부하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호르몬이 정상화되면 신경 부종이 빠지고 근육 대사가 회복되면서 떨림은 대부분 가역적으로 호전될 수 있습니다.
